실종예고 - 사라짐을 고하다.


하나의 건물이 더 이상 제 쓰임을 다 할 수 없거나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 등에 의해서 그 생의 마지막에 달했을 때 건축물은 철거라는 건축의 반대 지점에 서게 된다. 마치 사람의 생과 같이 세워짐과 동시에 소멸을 향해가는 건축물에게 철거의 단계가 부정할 수 없는 일이겠으나 그 소멸이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철거로 사라지는 것이 비단 물리적 사물만이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가 그곳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란 건축물 안팎으로 만들어진 장소에 대한 개인이나 집단의 누적된 기억일 수도 있고, 건축 당시의 정치-시대적 배경을 둘러싼 사연일 수도 있으며, 혹은 건축을 실제로 행했던 사람들이 공사 기간 공유했던 우여곡절일 수도 있다.

현재 전시가 열리고 있는 익산 창작스튜디오 건물은 1975년에 익옥 수리 조합으로 준공되어 40년 동안 다양한 쓰임새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다가 몇 해 전부터 가시화된 익산 구도심 활성화 계획에서 이웃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현 문화재단 건물이 보존 대상으로 지정된 것과 달리 철거 대상에 포함됨으로써 그 앞날이 불투명하다고 한다.

오래된 모든 나무가 그 가치를 인정받아서 벌목할 수 없는 것이 아니듯이 모든 오래된 건물이 보존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용 가능 연한이 지난 건물들은 그 구조적 안정성에 대해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야 함은 물론이고 오늘날 더욱 강화된 환경기준에 따라 인체에 유해한 자제들은 철거하고 요즘 기준에 맞는 것들로 교체되어야 한다. 이처럼 오래된 건물을 그 역사와 함께 수리하여 그 쓰임을 이어간다는 일은 상당한 의지가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와 역사에 대한 가치평가 기준이 경제적인 면에 편중되어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흔한 예로 서울의 북촌이나 전주의 한옥마을과 같이 도심지 내 한옥밀집지역에 활발한 지원 사업이 가능했던 것은 사실 도시형 한옥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재발견하여서라기보다 보다, 새로운 관광자원으로써의 경제적 파급효과에 지자체들이 주목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익산 창작스튜디오 건물을 바라보면 속된 말로 대세를 거스르는 것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근대건축물에 대한 학계의 재평가 작업이 실효성을 얻어 보존이나 보수 등의 구체적 개입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근현대 건축물에 대한 재평가는 참으로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유신시대는 일제강점기만큼이나 오늘날 기념하기에 거북한 우리의 역사라는 점도 있다.

그렇다. 이 건물은 결국 철거될 것이다.

건축가로서 나의 작업 주제는 이 건물이 철거될 때 함께 실종되어 버릴 이 건물 고유의 구축적 특징들을 관찰하고 기록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각각의 건축물들은 저마다의 특성이 있다고 믿는데 여기에서 특성이란 마치 동일한 형상의 수공예품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차이점들을 말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지구상의 거의 모든 건축물은 HANDMADE이다. 여러 건설인의 손에 의해서 한 땀 한 땀 구축되는 건물 구석구석에는 만든 이들의 고민과 자부심 그리고 때로는 유머가 숨어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눈에 보이되 읽히지 않고, 마땅히 이렇다고 할 건축적 가치로 인정받기도 어려운 그저 건축을 둘러싼 사람들의 애환일 뿐이다.

건물이 사라짐과 동시에 실종되어 버릴 그들의 이야기들을 여기에 전하는 매개체로서의 이 작업이 어느샌가 다가올 이 건물의 마지막 날에 조용히 울려 퍼질 진혼곡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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