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예고- 원도심 유감


나는 ‘원도심’이라는 단어를, 도시재생사업을 접하면서 작년에 처음 알게 되었다. 사실 국어사전에도 없는 이 단어는 같은 의미의 ‘구도심’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시개발 언어가 대체되는 현상을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가깝게는 뉴타운이 도시정비라는 행정언어를 대체하였고 이는 사실 재개발과 같은 말이었다. 좀 더 멀리는 신도시 개발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새마을 운동이 있었다. 말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책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참신한 정책이 될 거라 기대했지만, 그 내용은 언제나 고도성장기의 개발 논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수십 년간 반복해 온 이 개발의 논리가 최근에 급격히 방향 전환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집값의 폭락, 미분양 아파트, 하우스푸어 등 몇 년 사이에 우리의 상식을 크게 벗어난 현상들이 급작스럽게 나타나 더는 기존의 개발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이러한 변화의 주요 원인일 것이다.

나 역시 재개발의 폭력적인 방법에서 탈피하여 기존에 형성된 도시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도시재생사업에는 긍정적인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 다만 이 사업이 대상으로 하는 ‘구도심’이라 는 도시 공간을 왜 ‘원도심’으로 바꿔 부르기까지 하는지 그 의도를 지금까지 있었던 단어 바꿔치기의 역사와 겹쳐 생각해 보면 이 사업이 지향하는 바가 과연 우리가 떠올리는 ‘고즈넉한 옛 도심의 살기 좋고 느낌 있는(?) 마을 풍경 만들기’와 일치하는지 의문스럽다.

단어 바꿔치기가 단순한 말장난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구도심이라는 말은 오랜 기간 사용되면서 이를 지칭하는 바가 오래되어 낡은 도심지들이라는 명확한 대상과 현상이 있는 단어지만. 원도심이라는 말은 도시의 원래 중심이라는 모호한 시간적 공간적 경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도심이라는 말은 그 개념은 선명하지만, 실제 도시에서 그 범위를 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자체는 사업 시행 원년이 채 지나지도 않은 현재 제각각의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이미 실행에 돌입해 있다. 이들 계획을 살펴보면 대동소이하게 근대건축, 문화-예술, 관광, 역사 등의 단어들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꾸로 유추해 보면 이들이 정의하는 원도심이란 시대적으로는 일제 강점기쯤에 형성되었고 공간적으로는 그 시기에 지어진 건물들이 모여있는 일대를 뜻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온전하지 않은 것이 일부 지자체의 경우 80년대 신도시 개발로 쇠락한 상업 지구를 원도심이라 하고 재생사업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고 또 다른 지자체는 조선 시대 성곽 일대에 형성된 열악한 주거지를 대상으로 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원도심이라는 말은 개발하려는 도시 공 간 어디에 갖다 붙여도 말이 되는 편리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구도심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재생사업은 부동산 신화의 몰락 이후 마땅한 개발모델이 없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사업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사업의 대상을 지칭하는 원도심이라는 말은 널리 오랜 기간 쓰일 것이다. 심지어 도시재생사업이 또 다른 무언가의 사업으로 지워지는 때가 와도 ‘원도심’은 ‘구도심’을 대체하고 살아남을 것이다. 현상과 인식 사이의 균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목해야 할 것은 지금 당장 진행되는 현상들보다도 그 현상들의 누적이 가져올 도시 공 간의 변화이며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인식에 일어나는 변화이다. 만약 현재와 같이 개발하려는 어느 곳에나 원도심이라 칭하고 경쟁적으로 재생 사업을 벌인다면 머지않아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오래되어 보잘것없는 구도심은 정말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재생 사업의 결과로 개발된 구도심을 일컬어 원도심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지금의 구도심 풍경과 이를 이루는 건물들과 길 그리고 사람들 사이로 켜켜이 쌓인 시간은 그렇게 도시 공간에서 그리고 우리들의 기억에서 지워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재생된 원도심이 오래되어, 또 다른 개발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지금과 같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 도시개발의 역사는 누적된 시간을 제로로 만드는 일의 반복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유 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임에도 세대를 관통하는 도시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하지만 정작 역사의 장이 되었던 도시 공간은 지워져 가고 있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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