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에서 겨울나기 서바이벌 키트


작년 여름 문래동에 입주한 이래로 이 특별한 도시의 여러 모습들을 만나왔다. 그 가운데에서도 지금까지 겪어본적 없는 척박한 생활환경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매 순간이 이곳에 자리잡기 위한 일종의 시험무대와 같았다. 고백하건데 현대 도시에서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내가 이러한 생활환경에 노출 될 것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때때로 대중매체를 통해 전해지던 불우한 이웃의 모습은 어딘가 향수를 자극하는 현실을 떠난 이야기로 받아들였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이곳에서 여러해 상주하고 있는 작가들과의 대화에서 알게된 그들이 터득한 삶의 방식과 잡초같은 생존능력에는 경탄하는 한편 여태 이런 삶이 존재한다는것 조차 몰랐던 무지함에 자못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오늘 현재 영하 15도의 강추위는 어떻게 피해보려고 갖은 노력을 해봐도 뼈속까지 전해져온다. 늦은 밤 제아무리 열정으로 몸을 데우려해도 손끝이 시려운건 어쩔수가 없다. 그렇다고 산업용 전기가 싸다면서 뭣 모르고 전열기구를 밤새 켜고 지냈다가는 전기세가 월세만큼 나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화목난로를 들여볼까하고 기웃거리지만 그마저도 만만하지 않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나무들이 대부분 방부처리가 된 폐목들이어서 타면서 나오는 연기가 내 건강에도 좋지않고 주변 도시환경에도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내가 왜 여기서 이 고생을 하고있는걸까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마주하게 되는데, 임대료가 싸다던지 교통의 편리함 그리고 공장지대가 주는 생경한 풍경과 오감을 자극하는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장소가 좋아서 등의 모두가 말하는 여러 합리적인 이유가 있지만, 나의 경우 이 질문의 끝에는 오늘도 문래동에 살을 부대끼며 예술을 노래하고 때로는 사회를 말하는 여기 사람들의 공동체가 있다.

어느덧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이것이 지속되길 바라는 사람의 한명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모색 하던 도중 자연스럽게 건축가가 하나의 작업으로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게되었고 오히려 행동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삶을 다루는 건축가의 직업윤리에 어긋난다고 믿는다.

이번전시에 출품한 작업은 본래 겨울이 유난히도 더 추운 이곳 문래동에서 살고있는 한 이웃을 위해 구상한 ‘문래동에서 겨울나기 서바이벌키트’의 일부이다. 이 구상이 목표하는 바는 우선 저비용으로 별도의 난방기구없이 체온만으로 잠을 청할수 있는 일종의 수면캡슐 개발이고, 더 나아가 단열이 유명무실한 노후한 공장건물에 간단하게 설치와 철거가 가능한 저비용 단열패널의 개발이다.

현업인 건축설계에 사실 Off-season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경기가 좋지 않아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지언정 다들 무언가 고민하고 준비한다. 다만 대게의 경우 그 고민과 준비가 향하는 방향이 “On-season”의 어느 곳이기 마련이다: 재개발, 신도시, 지하철 신규노선확정, 00예산확보등등 돈이 몰리고 사람이 몰리는 곳이 우리가 일하는 “바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문래동은 재개발 바람이 불었을때 몰렸던 건축계의 다양한 관심이 사라진 지금 여기는 그야말로 Off-season 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지붕이 있어도 비가 새고 벽이 있어도 바람이 맘대로 드나들고 화장실은 여전히 재래식이고 바닥은 있어도 눕는건 곤란하다. 이런 이상한 현상을 오히려 정상인것처럼 비춰지게 만드는 이유는 이곳이 공장지대여서 원래 사람사는데는 아니라는 것과 낡아서 언젠가는 지우고 다시 새롭게 하겠다는 개발논리가 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여기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는 다른 도시의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세금도 낸다. 아무리 낡아보여도 그안에서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준비하는 삶이 있다.

묻는다. 아직도 이게 정상으로 보이는가? 난 이제 아니다.

단언컨데 이 도시의 그 누구도 - 노동자이건 예술가이던 성직자이건 - 이 겨울의 추위가 다른 도시의 누구보다도 더 춥게 느껴져야 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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